'운칠기삼(운이 70%, 기술이 30%)', '우중대박(비 올 때 큰거 잡는다)'
내가 낚시 갈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다. 내가 지어낸 말은 아니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붙이는 말이겠다.
낚시를 해보면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한 마리도 못 잡고 꽝치고 돌아오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생각지도 못한 대박을 치고 어깨 뻐근하게 생선을 메고 올 때도 있다.
십여 년 전 파키리 비치에 자주가 낚시하던 초창기에 무심코 던져놓은 아내 낚싯대에 75센티짜리 스네퍼가 올라올 때나 어떤 날 함께 일하던 윤과 순식간에 이십여 마리 장딴지만 한 카와이를 끌어올릴 때는 그야말로 운수 대통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는 꽝이 90프로는 되었으리라.
아직 낚시초보를 벗어나지 못해 강태공처럼 수면에 무심히 떠있는 찌를 보며 세월을 낚는 그런 때는 멀었다. 몇 달에 한번 찾아오는 기회로 바닷가에 낚싯대를 놓다 보니 한두 마리라도 건져서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낚시대회가 그랬다. 명세기 대회인데 이런저런 급한 일들이 겹쳐서 제대로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전날 저녁에 채비만 간단히 준배 해놓고 당일날 오전 다민이 축구경기 보고 집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동행하시는 교회 집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1시간 10분을 달려 테아라이비치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선수들이 도착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낚시대회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발전을 한다. 이번에는 Shimano낚시 회사에서 몇 명이 나와 부스를 차리고 낚싯대와 릴을 세팅해놓고 참가자들에게 25프로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이벤트를 한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오클랜드 카운슬에서 바다안전 관련한 담당자가 나와서 낚시할 때 익사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구명조끼 2개를 선물로 주고 몇 가지 자잘한 기념품을 참가자들에게 나눠 준다.
3시 30분이 다 되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자리추첨을 한다. 뭐든 첫 번째가 좋기는 하다. 1번을 뽑으면 본부석 바로 앞쪽에 자리를 잡고 이 사람을 기준으로 다음 번호는 왼쪽으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2번, 3번...
번호를 추첨하는 중에 대기자들 사이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양쪽 끝부근에서 등수에 드는 사이즈들 고기가 나왔다. 중간은 별로다... 등등등... 그렇기는 하다 작년에 내가 1번 자리에서 물고기를 낚아 2등을 했으니...
추첨 번호에서 밀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아뭇튼 나는 27개 팀 중에서 25번을 뽑았다. 60여 명 참가자 중에 25번이니 벌써 자리 잡고 낚싯대 펴놓고 미끼까지 대롱대롱 달아놓은 1번을 기준으로 끝도 안 보이는 비치를 걸어 내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동행한 집사님과 팍팍 빠지는 백사장을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아마도 물때에 맞춰 끝쪽에서 물고기들이 진입하면 그 초입에 있는 우리한테 큰 찬스가 올 것이다라고.. ㅎㅎ
낚시대회 시작시간은 4시다. 그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4시가 되면 캐스팅을 해야 한다. 내가 이쯤이 내 자리겠다 생각하며 가방을 내리며 시계를 보니 4시 5분이다. ㅠㅠ 서둘러 채비를 챙겨 캐스팅을 한다.
오늘 로우타이드가 5기 30분 부근이라 아직 물이 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동쪽바다 백사장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이곳이다. 캐스팅을 하기 위해 50미터 정도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지장화를 입고 무릎정도 깊이까지 계속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대회 주최하는 곳에서는 무릎깊이 이상으로는 들어가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나도 예전 같으면 무조건 허리 깊이 까지는 들어갔을 것인데 이제는 그럴 생각이 안 생긴다. 캐스팅하며 물속을 오가는데 파도로 인한 웅덩이가 규칙적으로 있고 그곳은 잘 안 보이고 실수하면 넘어지기도 할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금방 간다. 이렇게 재미있는 현장에 나오면 더 그렇다. 우선 해가 지기 전에 저녁밥을 해결한다. 준비해 온 코펠에 라면 3봉, 달걀 두 개를 넣고 맛난 라면을 끓였다. 내 주변에 도망 다니던 꽃게도 한 마리 넣었으면 했는데 그놈 속도가 너무 빨랐다.
오늘 동행한 분은 같은 교회 형님이다. 연세가 60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이런저런 이민생활 애환을 나누기에 충분하신 분이다. 해변에서 먹는 라면맛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나저나 모처럼 챙겨간 의자가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편안하니 게을러지는 것인가? 쉴 새 없이 미끼를 바꿔가며 캐스팅을 날려야 승률이 올라갈 텐데, 2번 캐스팅할게 1번으로 줄어들고, 멍하니 바다와 낚싯대 끝만 보고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간조 시간을 넘겨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는 이미 졌고 먼저 올라온 반달이 북쪽하늘에 휘영청이다. 어렴풋이 별들도 반짝인다. 일정한 속도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도 좋다. 바람은 거의 없다. 낚시 여건은 최상인데 입질이 없다. 나만...
옆자리 동행은 스네퍼 중간사이즈 한 마리와 큼지막한 카와이 한 마리를 낚으신다. 내 왼쪽 부자팀도 꾸준히 뭔가를 낚아 올리는 분위기다. ㅜㅜ 희한하네. 나만 입질도 없네.. 캐스팅 후 시간이 좀 훌러 혹시나 해서 릴을 감아보면 미끼가 던져 넣을 때 상태 그대로다. 이 부근에 고기가 없는 것이다. ㅠㅠ
별 수 없이 별구경, 은하수 구경만 원 없이 하다가 7시가 넘어 채비를 거두고 짐을 챙긴다. 어쨌든 본부석에 8시까지 돌아가서 승자를 따져야 하니 옆자리 집사님 물고기를 '팀경기' 계측에 올려보기로 맘먹는다. 내가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오늘 이 바닷가에는 물고기가 많이 없었고 어느 정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본부석에 도착해 보니 마당에 물고기들이 가지런히 누워있다. 말도 못 하게 많다. 거기다 사이즈가 다들 장난이 아니다. 우리 팀이 잡은 물고기는 명함도 못 내밀겠다. 많이들 잡았다. ㅡㅡ
1등은 52.5센티 스네퍼, 2등은 52센티 스네퍼, 3등도 스네 페다. 팀경기에 올라온 카와이도 100센티를 넘었다. 왁자지껄 시상식이 끝나고 하이라이트 행운권 추첨이다.
여러 곳에서 후원해 준 쌀, 라면, 고추장, 구명조끼, 낚시도구... 여러 가지가 있다. 추첨박스에서 참가자들 중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뽑힐 때마다 즐거운 환호성이 나온다. 뒷전에 앉아있는 내 이름이 나올 때도 되었는데 안 나온다. 선물 받고 바로 집으로 출발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진행자가 아직도 이름 안 불려진 사람 손들어보라고 한다.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다. 지질히 운도 없네.. 언뜻 보니 남은 선물도 변변치 않은 것 같다. 뭐가 남았나?! 낚싯대 케이스, 라면, 릴, 꽝같은 선물, 낚시도구함. 들어보니 꽝만 아니면 될 것 같다.
결국에 나는 릴을 받았다. 이런 행운도 드물 것이다. 참가자들 중에 제일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말이다. 낚시로 대어를 낚아 등수에 들어도 좋았겠지만 뜻하지 않은 최고 선물을 받으니 더 좋네 -!!
참가자들이 계측을 위해 내놓은 물고기들이 남아있다고 해서 카와이 네 마리를 덤으로 얻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주 알찬 낚시대회였다.
정말 낚시는 '운칠기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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